국가적 재난 상황 속 정부가 직접 위기를 해결하겠다며 한국판 뉴딜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뉴딜 정책이 정말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100년 전의 진실을 통해 알아볼까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대저택의 화려한 파티는 1920년대 미국의 슬롯사이트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자본이 몰리고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1929년, 갑자기 뉴욕 주식시장이 대폭락했습니다. 이후 실업률은 25%까지 치솟고 주가는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대공황이 발생했어요. 정부는 자본주의의 결함과 시장의 실패가 대공황의 원인이라며 시장에 적극 개입했고, 사람들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1929년 10월 24일 주가가 폭락하자 사람들은 생산이 과열되면서 공급과 수요 간에 균형이 깨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결함이 드러났다는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의 정책이 화근이었습니다. 1920년대 초, 미국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고 환율을 통제할 목적으로 통화 공급을 무려 60% 이상 늘렸습니다.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소비가 늘고 주가가 상승하니 잠깐 동안은 경기가 좋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정부는 통화량을 줄여야 했어요. 통화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자 투자자들은 앞다투어 주식을 팔았고,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증시가 폭락한 후, 경기 침체가 대공황으로 커진 것도 역시 정부의 대응책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부의 잘못은 감추고 시장의 탓으로 돌리면서 반시장적 정책들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1930년 후버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내세워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는데요. 다른 나라들이 보복 관세로 대응하면서 무역량이 대폭 줄었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피해가 심한 산업에 보조금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어요. 이로 인한 정부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 인상과 신설을 단행했습니다. 과세 부담은 슬롯사이트를 더 깊은 불황으로 밀어 넣었어요.
뒤이은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반시장적 정책을 이어갔습니다. 최저 임금제를 도입하자 실업이 급증해 4명 중 1명이 직장을 잃었어요.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정부 주도 공사들을 진행해 필요 없는 다리 77,000개와 건물 116,000개를 지었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테네시강 댐 건설로 15,000명이 집을 잃었죠. 또한 배우들을 고용해 무료 공연을 만들고, 공공건물의 새를 쫓는 일자리, 바람에 풀더미가 날아다니지 못하게 막는 일자리 등을 만들었어요. 이 모든 비용 역시 세금 인상과 신설로 충당했고 대공황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실업률이 하락하고 국내 총생산이 증가했어요. 사람들은 대공황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통계와 실생활은 달랐어요. 젊은이들의 징집으로 실업률이 하락했고, 전쟁 물자의 생산이 증가했을 뿐, 민간 소비재는 턱없이 부족하고 비쌌으며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어요. 실제로 대공황을 벗어난 계기는 민간 투자를 유인한 트루먼 정부의 친시장 정책이었습니다. 관세를 낮추고, 세금을 인하하고, 정부 지출을 축소하자 민간 경제가 활성화되었어요. 이후 10년간 실업률을 4% 미만으로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시장 실패로 인한 대공황을 정부 주도 슬롯사이트 극복했다는 건 사람들의 믿음일 뿐입니다. 사실은 정부의 실패를 시장 슬롯사이트 회복한 것이었어요.